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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미] 제8회 한일논생물조사교류회를 마치고...

논습지위원회 0 1,109 2013.07.24 09:02
제8회 한일논생물조사교류회(7/11~13)을 마치고 어젯밤 일본 참가자들을 바래다 주고 왔다. 2006년에 시작한 이 교류회가 벌써 8회째라니, 어제는 옆에 앉은 이나바 선생님 눈에도 눈물이 살짝 고인 듯했다. 선생님도 나이를 드셨는지-내게는 여전히 첫 모습 그대로 보이지만- 폐회식때 몇 번이고 "고맙습니다"는 말을 되풀이 한다.

그러고 보니 2006년 7월 홍성에서 제1회 교류회가 열렸을 때부터 한번도 빠짐없이 참가했다....
해마다 이 교류회가 있어서 여름을 넘기는 것처럼...시민의 손으로 만들어지는 한일교류회가 이렇게 꾸준히, 그것도 진화를 거듭하며 충만하게 이루어지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을 것같다. 또 교류회를 통해서 만나는 우리들은 정말 성숙해졌으며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왔다는 걸 실감한다.

교류회에 오면 1년간, 또는 몇 년동안 만나지 못했던 분들과 해우하게 되어 무엇보다 반갑다. 여전히 같은 목표를 가지고 함께 가는 이들이란 실감. 반가움이 있어 행복하다. 그런가 하면 처음 만나는 분들에게서 신선한 자극을 받는다. 이번에도 그랬다. 네오니코틴성분, 피프로닐성분 농약의 피해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더 알리려고 dvd랑 그림책을 만들어서 온 분들...이 교류회에 오기 위해서 한국인 지인을 통해 우리말 자막을 넣기 위해 밤샘 작업을 며칠 씩 했다는 그 정성에 가슴이 먹먹했고 농약으로 신경기능이 훼손되어 다리를 허우적거리며, 파르르 떨면서 꿀벌들이 죽어가던 모습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논생물조사방법도 나날이 진화하여 교류회 초기엔 방형구 조사만 했는데 그후 15분 조사, 그리고 올해는 거점조사라는 방법을 했다. 한 방법을 시도해서 일단 곳곳에서 해보고 이게 정착하면 다시 조사 목적, 참가자 규모, 기존 조사에서 성취하기 어려운 점을 보완하기 위해 고안해낸 새로운 조사방법이 등장하여 참가자들의 호기심을 건드린다. 이번에 한 거점조사는 조사지도원이 적고 참가자 수는 많은데 조사 시간이 별로 많지 않을 때, 논에 사는 생물 종 다양성을 공유할 수 있는 방법으로 고안된 것었다. 준비 도구도 비교적 간단하고 다같이 무리없이 참가하기 쉬운 조사방법이다. 초기에 방형구 조사하면서 실지렁이, 깔따구, 거미, 개구리 수를 수학적인 방법으로 집계하던, 땀 뻘뻘 흘리며 일일이 실지렁이 수를 세던, 우리들의 진지하던 모습이 생각났다.

처음엔 논 생물, 곤충 이름도 거의 몰랐는데 한살림의 논살림 활동가들, 아이쿱의 겨리 활동가들은 발견되는 대부분의 생물 이름을 척척 댈 정도로 시민 전문가다. 논생물조사 시 우리 활동가들의 행동을 보면 감탄, 눈부심, 신속하고 낭비없는 움직임에 놀랠 뿐이다. 우리는 이제 한일 논생물조사 도감도 만들었고 자주 발견되는 지표종은 양쪽나랏말로 이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어쩜 그리도 밝고 맑은가! 생산자 분들도 마찬가지다. j 생산자는 집요하게 이나바 선생님 붙들고 농사 기술 이야기에 여념이 없고, y 생산자는 도대체 농사만 잘 짓는 게 아니라 왜 이리 그림도 잘 그리는지! 못하는 게 뭔감유~ k 생산자는 평소에 안잡던 채집망 들고 논 속에 들어가니 옛날 악동 시절 생각난다며 눈을 빛내며 수서곤충을 채집해서 오셨다. 일본에서 온 i 생산자는, 논에 들어가서 체인 제초기를 끄는 것도 환갑이 넘으니 확실히 체력이 부쳐서 지금은 참치 낚시에 쓰는 낚시대에 체인 제초기를 달아서 전동으로 감아올리메 제초하고 있다고 자랑한다. 50논배미 각각 하나 하나 다르게 관리한다는 t 생산자가 눈을 반짝이며 자기 논 사진을 보여줄 때는 압도당하는 느낌이다.

나는 이 교류회를 통해서 유기농업의 본래의 모습, 인간이 식량을 얻기 위해 다른 생명을 죽이면서 자연을 착취하던 농업에서 생물다양성을 복원하는데 기여해야 한다는 강한 사명감을 얻게 되었다. 과학적으로는 먹이사슬이라고 표현하지만 우리가 지녀야 할 윤리로서는 생명의 만다라라고 표현하던 이와부치 선생님의 상냥함. 개구리의 수명은 얼마일까(청개구리는 최소한 3년)이란 물음. 개구리들이 산에서 논으로 이동하다 배수로에 빠졌는데 수직 콘크리트 벽을 타고 올라가지 못해서 떼죽음을 당하지 않도록 뚜껑을 닫아놓거나 수초를 남겨놓는 배려. 논에 물을 떼는 시기에 수서생물이 이동할 수 있도록 설치한 둠벙이나 논 속의 좁고 긴 물길이 수온을 올려 냉해를 막기도 한다는 사실...한 생명을 살리면 그 생명이 또 다른 생명을 돕는다는 원리를 실감한다.

8년동안 우리가 얻은 성과도 적지 않았다. 2008년 창원 람사르조약에서 논은 습지생태계의 일부이며 그 속에서 생물다양성을 증진해야 한다는 논습지결의를 이끌어냈다. 대한민국에서는 4대강 공사로 정부와 시민이 등돌리며 좌절하고 있을 때 일본에서는 시민들이 정부와 협력하여 2010년 생물다양성협약(cbd) 나고야 총회에서 아이치 목표에 농업, 양식업, 임업 분야에서 생물다양성 보전 목표를 설정하여 노력하라는 내용을 집어넣는데 성공했다. 일본에선 황새 방사, 따오기 방사, 한국에서는 황새 인공사육, 따오기 인공사육 시작...농촌진흥청의 생물다양성증진을 위한 다양한 연구프로젝트...

이 교류회를 통해서 유기농업의 기술도 크게 향상되었다. 주로 이나바 선생님의 유기재배기술이 바탕이 되었는데 종자 소독부터 수확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저투입형 농법의 기본은 벼를 튼실하게, 면역력있게, 자신의 힘으로-생물다양성이 풍부한 토양에서 양분을 흡수하여- 자라게 하는 것이다. 엄마가 아이를 키우는 것과 이치는 똑같다. 농약과 화학비료를 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는 유기가 안된다. 농약과 화학비료를 안치는 게 목표가 아니라 벼가 튼튼히 자라도록 기본-성묘, 소식 재배 등-를 갖추고 논에 다양한 생물이 깃들게 하여 벼와 공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본을 갖추려는 진지한 노력이 참가자들로 하여금 우리가 추구해야 할 세계를 추체험하게 만든다. 게다가 논 생물과 농업과 생명을 사랑하는 이들의 아름다운 표정들...평화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하는 것이라고 하던데 교류회 내내 우린 평화롭고 자유롭다.

이번에 이나바 선생님이 선물하신 그림책 <하느님이 준 선물 해바라기 유>에서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오염된 농지에 유지식물(해바라기, 유채, 콩)을 심어서 토양을 정화하고 있는 그린 오일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있다. 원리는 이렇다. 오염된 농지에 해바라기, 유채, 콩을 심어서 세슘을 흡수시켜서 토양 내 잔존 세슘을 줄이는 것이다. 무농약, 무화학비료로 재배하여 씨앗으로 식물성 기름을 짜내고 줄기와 잎사귀는 400도에 탄화시켜서 숯으로 만든다. 세슘은 수용성이므로 식물성 기름에는 침투하지 못하고 이 숯에 응축된다. 부피도 1/5로 줄어들기 때문에 보관도 비교적 용이하다. 이나바 선생님은 이런 방식으로 짜낸 식물성 기름을 판매하여 자금을 만들어 다시 유지 식물을 심고, 줄기와 잎은 숯으로 만들어 세슘을 응축시키는 방법으로 반복하면서 방사능에 오염된 토양을 정화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이 세슘이 응축된 숯은 후쿠시마 원전 근처에 최종 방사능폐기물 처리장이 생기면 거기에 보관할 작정이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세슘이 생태계에 영향을 주지 않을 정도로 정화하기까지는 까마득한 세월이 흘러야 할지 모른다. 이와부치 선생님도 고향 미야기 현에서 생물다양성을 증진하는 논농업으로 농지를 정화하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내가 논생물조사교류회를 통해서 만났던 이들은 대다수가 이런 분들이었다.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도피하지 않고 본래의 모습을 찾기 위해 방법을 고안하며 몰두하는 분들이다. 진정한 의미의 자유인...

이번에 과제도 여럿이 생겼다.
1. 2014년 10월 평창에서 열릴 생물다양성협약 제12차 총회 때 나라별 생물다양성보전 목표 달성을 위한 보고서를 제출해야 할텐데 이 때까지 한국의 ngo들은 정부와 함께 실천목표를 점검하여 행동해야 한다.

2. 유럽연합이 올 5월에 2년간 사용금지한 네오니코틴 성분 농약(한국에서 유통되는 농약의 22% 정도라고 함)의 현황, 또 피프로닐성분 농약 현황을 파악하여 이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는 것. 이 성분의 농약은 꿀벌의 대량 폐사 뿐만 아니라 자폐증, adhd 등 발달장애와도 관련성이 의심되고 있다. 농약 뿐만 아니라 가정용 살충제(개미, 바퀴벌레용...)에도 이 성분이 쓰이는 것으로 추정된다.

3. 그림책과 논문, dvd의 우리말 작업과 보급 활동을 통해서 농업의 생물다양성 복원을 위한 노력, 경각심을 계발하는 활동을 어떻게 광범위하게 진행할 것인지...

이 교류회는 한일 국가간 대립이 첨예했던 시기에도 영향을 받은 적이 없었다. 시민 대 시민의 교류였기 때문이다. 생명을 사랑하고 농업을 중시하며 민주주의적 소양을 지닌 시민들의 교류이었기 때문에 지속할 수 있었던 것도 같다. 내년엔 9년째, 내후년은 10년째 교류회가 열릴 것이다. 교류회 마지막에는 우리말과 일본어로 주제가 겨울무논을 부를 것이다. 그동안 사라져 간 생물종들이 조금이라도 복원되도록, 더 이상 사라지지 않도록 자신이 있는 곳에서 각자가 할 수 있는 일부터, 꾸준히 생물다양성이 풍요로운 더 나은 세상을 향해 우리는 또 모일 것이다.
 
글. 김형미 상임이사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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